1453년 오스만 튀르크의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점령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육로가 막히게 된다. 아시아에서 금과 향신료를 엄청나게 들여오던 유럽에게는 아주 큰 사건이었다.
그때부터 유럽은 아시아로 가는 항로 개척에 열을 올리게 되고, 콜럼버스는 아무도 가지 않는 서쪽 방향으로 항해하기로 마음먹는다.
처음 그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만난 사람은 포르투갈의 주앙 2세. 하지만 주앙 2세는 그의 계획이 터무니없다 여기고 투자제한을 거절한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스페인.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가톨릭 군주 이사벨과 페르난도를 만나 설득한다. 그들도 역시 망설였지만, 항로 개척에 있어서 앞서 나가는 포르투갈을 이기기 위해 과감히 투자를 한다.
1492년 첫 항해에서 배는 세척이었다. 목표는 금과 향신료. 이 신항로 개척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로 인한 인생역전을 꿈꿨다.
배의 내부 상황은 끔찍했다. 위생시설이 없어 오물과 악취가 넘쳐났다고 한다. 그래서 일어난 선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콜럼버스는 실제 항해한 거리를 줄여서 말하고 기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36일 만에 아메리카 대륙을 밟게 된 콜럼버스. 그는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목표로 했던 금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고, 결국은 원주민 7명과 녹색 앵무새만을 데리고 귀환하게 된다.
그는 투자자의 환심을 얻기 위해 그곳의 상황을 거짓으로 과장한다. 그래서 1493년 엄청난 지원을 받아 17척의 배로 두 번째 항해를 떠나게 된다.
그는 첫 항해에서 돌아갈 때 1척만으로 돌아가야 했고, 인원이 많아 39명의 선원을 두고 귀환했는데, 돌아와 보니 모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콜럼버스는 원주민을 가혹하게 대하게 된다. 금과 향신료는 이번에도 찾지 못해서 대신 식민도시를 개척하는데, 원주민을 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식민지 사업 보고서와 함께 원주민 550명을 노예로 보내고, 그는 원주민 판매로 돈을 가장 많이 벌게 된다.
그는 원주민들이 할당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시 가혹하게 처벌했고, 원주민들은 노예로 보내지지 않기 위해 동반자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역시나 금을 찾지 못하고 돌아갔고, 겨우 기회를 얻은 3차 4차 항해에서도 역시 성과를 얻지 못한다. 그런데 그의 가장 큰 후원자 이사벨이 사망하면서 결국 1506년 그도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1519년부터 완전히 대륙정복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에르난 코르테스는 자신의 목표 달성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타고 온 배를 모두 침몰시키기까지 한다.
그리고 아스테카인들과 원수인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아스테카인들과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학살하게 된다. 그들의 죽음 중 가장 큰 원인은 유럽인들이 가져온 천연두 때문이었는데, 당시 2500만이던 인구의 90%가 사망해 250만이 된다.
호수 위에 농지도 간척하고 수로도 만들고 시장도 발달했던 아스테카 제국의 찬란한 문명은 그렇게 사라진다.
이후 프란시스코 피사로라는 인물은 발달한 서양식 철제 무기와 총으로 잉카제국을 멸망시킨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계속 '니들이 뭔데'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신대륙 '발견'이란 단어를 조심하라고 배웠었다. 우리나라 또한 다른 국가들의 침범에 의해 피해를 봤던 만큼, 유럽인들 입장에서 쓰인 역사와 그 용어들을 언제나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아메리카 대륙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그곳에서 원주민들이 살았다. 한국도 유럽인들이 알지 못했을 뿐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언제나 이곳에 있었던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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